'흔들어서 실행 취소'는 왜 골칫덩어리가 되었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사용하다보면 아래와 같은 창이 뜰 때가 있다.

입력 실행 취소를 취소하시겠습니까 실행 취소 하시겠습니까

이는 iOS의 '흔들어서 실행취소' 기능으로, 나도 모르는 새에 폰을 흔들었다면 기능이 실행된다.

설계의도는 '사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다가 잘못 입력했다면 폰을 흔들어서 방금 쓴 텍스트를 지울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실제로는 '멀쩡하게 핸드폰 잘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끄려고 실행 취소를 눌렀더니만 내가 쓰던 텍스트를 날려버리는' 빌런 기능이 되었다.

'흔들기'는 좋은 트리거가 아니다

올바른 UX는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별다른 사전 학습 없이도 실행 가능한 트리거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흔들기'는 좋은 트리거가 아니다. 흔들어서 기능을 실행시키려면 센서가 일정 기준 이상의 흔들림을 감지해야하는데, 여기서 '일정 기준'을 사용자가 알기 어렵다. 대체 어느 정도로 흔들어야 인식이 되는 것인가?

민감도를 너무 낮게 설정하면 기능을 사용하려고 핸드폰을 흔들어도 실행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민감도를 너무 높게 설정하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기능이 실행될 수 있다. 이는 모두 오작동에 해당하고, 사용자 경험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기기의 크기와 무게에 대한 고려 없이 아이패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있다는 점 또한 문제다. 솔직히 누가 아이패드로 글을 쓰다가 그 큰 기기를 흔들어서 실행취소를 하려고 할까? 아이패드에서 해당 기능이 실행 됐던건 실수로 패드를 떨어뜨렸을 때 밖에 없었다.

알 수 없는 버튼의 메시지

팝업창이 뜨면 '입력 실행 취소'라는 메시지 아래에 '취소''실행취소'라는 두가지 버튼이 존재하는데, 둘 중 어떤 버튼을 눌러야 창을 닫을 수 있고, 어떤 버튼을 눌러야 입력이 취소되는지 단번에 알 수가 없다.

이는 iOS의 한국어 번역에서 기인한 문제점으로, 시스템 언어를 영문으로 설정할 경우 '취소/실행취소'가 아닌 'cancel/undo'로 비교적 명확한 기능을 표현하고 있다. iOS에서는 'cancel'은 '취소', 'undo'는 '실행취소'로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발생한다. 최소한 '입력 실행 취소'라는 메시지에 맞게 'undo''입력 취소' 정도로 번역해줬어도 해결될 문제지만...

애플은 아이폰이 한국어를 정식 지원한 이래 해당 기능의 번역을 변경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iOS 3때도 똑같은 번역이였다)

그래도 다른 창의 '취소'와 위치는 동일했다

사실 iOS 7 업데이트 이전까지는 크게 혼동할 유인이 적었다. 팝업창의 버튼 구성이 현재처럼 수평형 배치가 아닌 수직형 배치였기에 어떤 팝업창이던 제일 하단에 '취소(cancle)'버튼이 존재했고, 다른 기능을 사용하면서 학습한 지식으로 자연스럽게 제일 하단에 있는 버튼을 눌러 해당 기능을 종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iOS 7 업데이트 이후 팝업창에서 요구하는 기능이 2가지인 경우 버튼이 수평으로 배치되도록 레이아웃이 추가되었고, 해당 팝업을 별다른 액션 없이 종료하는 '취소'는 어떤 기능에서는 왼쪽에 있고, 어떤 기능에서는 오른쪽에 위치하는 등 일관성이 사라지면서 혼란은 가중되었다.

결국 일관성 없는 레이아웃으로 인한 학습 효과의 부재 + 잘못된 번역의 조합으로 현재와 같은 혼란의 UX가 탄생한 셈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작동 방식

우여곡절 끝에 흔들어서 실행취소를 정상적으로 실행했다고 가정하자.

만약 메모앱에서 맥북 노치 좀 제발 빼주면 안될까라는 문구를 작성한 이후 '흔들어서 실행취소' 기능을 수행하면 어떻게 바뀔까?

맥북 노치 좀 제발 빼주면 안될ㄲ로 바뀐다. 폰을 흔들고 '취소'와 '실행취소' 중 뭐가 맞는지 잘 찍어서 기능을 수행한 결과가 고작 백스페이스 하나 누른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저 상태에서 다시 한 번 기능을 수행하면 맥북 노치 좀 제발 빼주면 안되로 바뀐다. 이번엔 백스페이스를 두 번 누른 것과 같은 결과다. 일관성이 결여된 작동방식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영어로 작성한 글에 대해 같은 기능을 수행하면 단어나 문장 단위로 입력 취소가 이루어지는데, 이것도 예측하기 어려운건 매한가지다. 어떤 때에는 단어가 지워지고, 어떤 때는 문장이 지워지며, 어떤 때는 지금까지 쓴 글이 다 지워지고 아까 쓰고 지웠던 글이 살아난다.

애플의 결론: 대체할 새로운 UX의 추가

정말 끝내주는 UX라 할 수 없을 수 없다.

십수년간 사용자의 불만이 쌓이자 애플은 iOS 13에 이르러 '세 손가락으로 스와이프 해서 실행취소/복귀' 제스처를 추가했다. 개인적으로 누가 작은 핸드폰 화면에 손가락 세 개를 올려두고 사용할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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