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 《선량한 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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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닐 뿐이죠."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가사는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말하려는 핵심을 잘 담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때,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게 된다.

4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선택장애'라는 말이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책을 펼치니 더 깊은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벗어났을까?"

내 삶을 돌아보면 이 질문이 더욱 와닿는다. 나는 한때 최고의 교육을 받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좋은 것들로 가득한 환경에서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아주 다른 자리에 있다. 특권을 잃어가면서야 그게 '특권'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특권이 흔들리고 나서야 내가 가진 특권들이 무엇이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특권은 '가진 자의 여유'라서, 가지고 있을 때는 그게 특권인 줄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누린다고. 그리고 그 특권이 흔들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차린다고. 내 경험이 바로 그랬다.

우리는 모두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는 다수자고, 또 다른 면에서는 소수자다. 중요한 건 이런 복잡한 정체성 속에서 계속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하지만 돌아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로는 행동해야 한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5·18 광주에서 군인의 총에 돌아가신 어느 야학교사의, 죽기 전날 밤 일기에 나온 말이다.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 노벨상 수상자 강연에서 인용한 이 문장은, 양심이 주는 고통과 마주한 한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고백이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사회 문제들과 마주한다. 누군가는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고, 또 누군가는 분노한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나는 국회로 달려갔다. 다음 날, 누군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행동할 생각을 했냐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 순간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훗날 내 자식이 "아빠는 그때 뭐 했어?"라고 물었을 때, 뭐라도 할 말이 있어야 했다. 이건 비단 그날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마주할 때마다, 가만히 있는 것은 묵인이 되고, 침묵은 동의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그저 우리를 가르치려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용기를 요구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던 순간이 더 많았던,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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